예전부터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저의 글솜씨로는 자칫 잘못하면 “꼰대”가 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조심해왔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누구나 어릴때는 시대의 흐름이나 주변의 상황들을 파악하고 살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으나 저는 아니였기 때문에 ..^^; (그저 Pat Metheny 같은 기타리스트가 되는게 꿈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상황들, 흐름들 그리고 분위기 등을 무의식적으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그럴수도 혹은 그저 예민해진 것일 수도.
저는 한국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간접적인 뉴스들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접하는 이야기들과 시각이 전부이기 때문이죠. 어떤 이들은 그것이 모든것을 대변한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인터넷과 동떨어진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던, 한국이던 캐나다건,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은 전세계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화를 각자의 나라의 문화에 조금씩 변화되어 동시대에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지난 몇년간 캐나다와 한국이 굉장히 비슷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격변을 겪은 것처럼 말이죠)
너무 서론이 무거웠네요.
요즘엔 “모릅니다” 라고 말하는걸 쉽게 보지 못합니다.
조금은 격양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까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패배하거나 지는 것 혹은 자신이 낮춰지는 것이 아닌데,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왠만한 정보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있어서 일까요? 토론이나 이야기 중에 자기 의견보단 인터넷의 의견을 자기 의견처럼 말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칫 이 글을 정치나 사회현상에 대한 글로 오해하실까봐, 음향에 대한 이야기로 집중해 보겠습니다.
저는 저의 블로그 글들이나 유투브 영상들에서 절대로 다른 사람이나 특정 제품을 비판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잘 실천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선 가끔..) 하지만 레슨을 할 때는 어짜피 1:1 개인간의 대화이기 때문에 때론 강도 높은 비판을 육두문자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들이죠.
학생 : [xxxx] 제품이 소리가 투명하고 차갑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들 하는데 정말로 그런가요?
나: 아니요. 그 제품 사운드가 차갑다고 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학생: ..?
나: 브랜드 칼러가 파란색이라 그래요.
—-
학생 : 이 제품 엄청 따듯한 소리를 내어 준다는데 정말인가요?
나 : 아니요, 그 제품이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제품 칼러가 빨간색이라 그래요. 파란색이였으면 차갑다 그랬을걸요?
—-
최대한 순환하여 풀어본 이야기인데 많이들 들어보신 이야기들이라 생각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위의 이야기가 100프로 허구가 아니라는 것이죠.
오랜시간 음향 블로거와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아주 쉽게 저런 공식이 성립이 되는것을 보아왔습니다.
저의 구독자들이 저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제가 제일 많이 한 대답은 “안써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을 아실겁니다. 인터넷에서 많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어디 대학 교수라고, 모든 걸 다 알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죠.
어떠한 브랜드가 출시가되면 수많은 전문가(?)들이 전선에 뛰어들어 나오지도 않은 제품에 대한 평가를 시작합니다.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공개한 스펙 차트만으로 평가를 완료하게 됩니다. 제품이 나오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얼리 아답터들에 의하여 제품에 대한 평가가 나오고 그 몇명의 말에 의해서 그 제품의 사운드는 정해져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제품을 사용해봐도 정확하게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보다 남들의 말에 더 귀를 귀울이게 되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그 제품 어때?” 라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이 그 제품을 평가한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말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그 제품의 이미지와 사운드는 정말 제품의 퍼포먼스 보다는 다른 요소들로 인하여 만들어지게 되죠.
이런식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제품들의 이미지들과 평판을 이 글을 보는 많은 분들은 머리속으로 떠올릴 수 있을겁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굉장한 악영향을 가져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해버린 순간 주관을 잃어버리고 휘둘리게 됩니다. 정말 좋은 장비를 구매했는데 누가 한 말 하나 때문에 자신의 장비를 못 믿게되고, 정말 좋은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이게 정말 좋은 소리인가?”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이러 이러한 소리인가?” 라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자신의 작업물도 못 믿게될때도 있고 또 음악/음향 보단 장비만을 찾게 됩니다. 악순환의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죠.
써보지도 않은 제품에 대한 평가를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거하여 스스로 하고 있던 경험, 누구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마이크리뷰를 할 때 최대한 다양한 악기에 다양한 다른 마이크와 함께 비교를 해서 리뷰를 작성하는 이유가 이것 입니다. 모든 사람의 환경이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마이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소리에 따라 1000만원 가격의 마이크가 10만원 가격의 마이크보다 좋지 못한 소리를 내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다양한 상황의 예제를 들려드리고 스스로 듣고 평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다양한 소스에 다양한 마이크와 1:1 비교를 하고, 믹스 전과 후의 사운드, 프로세싱 전과 후의 사운드까지 몽땅 집어 넣어 만든 마이크 리뷰에 이런 댓글을 누군가 달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마이크 좋은건가요? 가성비가 어떤가요?”
그 댓글에 저는 답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들어도 모를 수도 있고, 정말 잘 아는 사람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정말 곡이 좋은지 현업 프로 작곡가에게 물어봤습니다”
“k-pop을 외국인에게 들려줘 봤습니다 [Reaction Video]”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인기가 많은 것은 “그렇습니다” 보다는 “그렇다던데요?” 라는 말을 더 쉽게 볼 수 있는 사회의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보다 남들의 생각과 의견에 의존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식이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녹음된 소스 하나 달랑 올리면서 혹은 사운드 예제 하나 없이 “최고의 가성비!” 라는 유저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한국에서 가성비 최고로 등극한 마이크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받는 믹스 작업 의뢰중, 녹음된 소스 때문에 거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혹은 간신히 거절 컷오프 라인을 넘어서서 받은 의뢰물에서 공통적으로 안 좋은 소리의 보컬 사운드에 지쳐 어떤 마이크를 사용한것이냐 물어볼 때마다 그 마이크의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 상당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한 악순환입니다.
발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아주 쉽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안 좋은 제품을 최고의 제품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으며 브랜드의 사운드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야 K-POP이 정말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북미에서 아무도 K-POP을 신경쓰지 않을 때 라디오 플레이 하나 없이 음반 사재기로 차트에 음원을 올린 뒤 ‘현재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라고 여론을 조작한 인기그룹도 하나의 예죠)
모르는 것은 잘못된 것도 아니며 비판 받을 것도 아닙니다. 모른다는 것은 앞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알아가고자 하는 자세가 스스로를 더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배우고, 알아보고 스스로 사고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꼰대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십 몇년전 음악을 처음 시작하면서 도대체 어떤 DAW가 제일 좋은건지, 컴퓨터를 무슨 부품으로 맞춰야하는지, 마이크는 뭘 사야 답답한 소리가 안나는지, 플러그인 하나만 걸면 믹스가 좋아지는 그런 제품은 없는건지..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찾고 검색하고 찾아다녔던 것이 저입니다.
“44.1kHz 로 녹음해서 그런거라고, 88.2kHz 로 녹음하면 좋아질거라고 그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고.”
그 한마디에 88.2kHz로 처음 녹음하고 “와 진짜 소리 죽이네 역시 88.2kHz 로 녹음해야 되는 거구나” 라고 말하며 한창 들떠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죠.
“아 이번에 완전 녹음 깨우쳤습니다 ㅎㅎ (어디서 본거면서) 제가 뭔가 이것 저것 시도 해보다가 44.1kHz에서 88.2kHz로 넘어가 봤는데 완전 신세계에요. 마치 Cubase SX2 쓰다가 SX3로 넘어간 느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아무튼 녹음 디테일 완전 살아있으니 나중에 제 스튜디오로 작업하러 오세요 ㅎㅎ”
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몇 개월 뒤에 작업물을 뒤적거리다 와 역시 오늘도 소리가 죽이네라고 하며 바운스를 하려고 보니 44.1kHz로 되어있는 프로젝트를 보며.. 예전에 작업 했던 바운스 파일들이 어떤게 44.1이고 어떤게 88.2인지 일부러 모르게 스스로 틀어보며 전혀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던 그 날. 아무도 신경 안쓰는데 혼자 술먹고 지난 몇개월이 부끄러워 울며 징징대었던 그날이 부끄럽지만 그 무지함을 인정하면서 한발자국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44.1kHz 프로젝트를 보며 방금 몇 초 전까지 좋다고 했던 그 소리가 “아, 다시 들어보니 별로네. 그냥 다 엎고 다시 88.2kHz로 잡아야겠다” 라고 했다면 누군가가 인터넷에 던져놓은 한 문장 때문에 저의 앞으로의 10년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샘플링 레이트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고 다녔을 수도 있겠네요.
무겁고 불편한 글로 인하여 공격을 당할 것 같은 예감에 글을 지울까 생각을 하면서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아날로그 장비의 복각 플러그인들의 출시에 너도 나도 얼마나 소리가 비슷한지 다 안다는 어투로 한마디씩 남기고.
너도 나도 안 써본 아날로그 장비가 없고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콘솔들에 대한 사운드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엔 그것이 스스로 파악하고 알아보기 보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을 자기 의견인 것처럼 그것에 살을 덧붙여 말하며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이 글은 그들에 대한 하소연도 비판도 아닙니다.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르면 배워나가면 됩니다.
모르는 것을 거짓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의 비판은 흘려들을 수 있습니다.
모르면서 비판하는 사람은 안타깝다 생각이 듭니다.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 한다면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워 발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배워나가며, 열려있는 마음으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알게되어 뜬구름같은 거짓 지식이 아닌 언제 어디서든 무기가 될 수 있는 진짜 지식을 채워갈 수 있을겁니다.
저도 컴프 어택의 0ms과 20ms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해 믹싱 엔지니어의 자질이 없는건가 좌절하였는데 장비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셨지만 저에게도 해당되는 글인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좋은글입니다.
맞아요… 실제로 본인들이 다 해보고 그러는건지
되도록 요즘은 스스로 들어보고 느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어렵지만… 확실히 실력에는 도움이 되는듯
가성비는 없다라는걸 그런 리뷰들 보면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업체 로비글도 많고 가성비로 무슨 최상급인척 하는데 막상 사보면 안그렇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두 공감합니다. 되새겨 봐야 할 이야기네요.
소름이 돋네요 . 요즘 내 진심이 뭔지 몰랐는데 남의 평가만 의식해서 그런거 같아요
전…정말 그냥 취미로만 옛날부터 노래만 깔짝 불러왔던 아재인데요… 4년전쯤부터 본격적으로 작곡과 프로듀싱에 대해 공부하며 실제 작업을 하면서 주수님께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나이 40먹고 프로할 것도 아니고 음악으로 돈 벌 생각도 없는데, 자고 일하는 시간 빼면 음악에 올인하면서 기술적인 면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머리로만 막연하게 알고 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ㅎ 그러니 주수님 말씀처럼 남의 말에 휘둘리게 되더라고요. 예전부터 제 곡 믹스하면서, 모르는 거 있을 때마다 유튜브 영상 참 많이 찾아보는데, 누군가가 뭐 플러그인 좋다고 하면 혹해서 사서 걸어보고 뭔가 차이는 잘 모르겠는데 좋아졌다는 느낌(플라시보 같은)만으로 만족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 몇 달도 정말 열심히 곡 만들고 믹스하다가 도저히 저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마다 플러그인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어제도 Sonnox Inflator가 그리 좋다는 인터넷 영상에 혹해서 데모 받아서 내 믹스에 넣어서 한 시간을 껐다가 켰다가 비교해서 들어보고는 정말 도저히 차이를 알 수 없어서….사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뭐…드럼 트랙에 최대 수치로 올려서 걸어보니 눈꼽만큼의 차이는 들리긴 했네요. 역시 문제는 플러그인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교훈만 얻었습니다.
영상 참 많이 보는데… 플러그인 강좌 같은거 보고 ‘소리가 다르죠?’라는 주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아…. 나는 왜 차이를 모르겠지…이러며 좌절하곤 합니다…ㅠㅠ ..
이런 글 보니 다시 한 번 저에 대해 반성하게 되네요. 배우는 자세로 항상 모르는 건 인정하며 발전하려고 해야 한다는 거…당연한 건데… 주수님 덕분에 다시 한 번 깨우칩니다. 감사합니다. 주수님 영상에서 뭔가 기술적인 걸 배우기 보다는 항상 마인드와 자세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주수님 수준의 강의는 제가 들어도 대부분 적용을 못해요…ㅠㅠ 귀가 닫혀있어서….
감사합니다.
30년전 대학1학년 교양과목을 들을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소리에 대한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