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https://retrogearshop.com/products/shadow-hills-mastering-compressor


대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작년 9월부터는 스튜디오 일이나 믹스 일을 많이 줄였었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 때문에 한가지에 조금 집중을 하고 싶어서였죠.

대학교의 2 학기가 끝나는 4월부터는, “학교에 가르치러 가지 않아도 되니 놀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에 그동안 부족한 시간 때문에 받지 않았던 스튜디오 일과 믹스/마스터링 일을 다시 시작하고 눈을 떠보니 벌써 방학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몇년간 대부분의 스튜디오 일이 레코딩이었다면 지난 5~7월은 믹스와 마스터링 작업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 작업이야 항상 하는 것이지만, 굉장히 많은 시간을 믹스와 마스터링에 몰입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의 이런 작업들을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믹스 엔지니어들은 동시에 여러 의뢰인들의 작업을 믹스하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 세션을 쉽게 리콜할 수 있는 ITB (In The Box), 플러그인으로의 작업이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직까지 모든 것을 아날로그로만 작업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죠. 플러그인들의 성능은 너무나 좋아졌고, 아날로그의 느낌을 실제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 (노이즈, 켈리브레이션, 리콜, 컨버팅 등등) 에 구애받지 않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 매력이 더 빛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잊게 해주는 손맛과 실제 하드웨어의 비주얼적인 풍족감은 플러그인들이 아무리 하드웨어와 같다 한들, 하드웨어를 찾게 하기도 하죠.

이것이 또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하이브리드 믹싱을 찾게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믹스를 오래하다 보면 하드웨어 인서트를 통하여 채널별로, 혹은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스테레오 Mix-bus 용 제품들 또는 아날로그 서밍에 눈을 들이게 되죠.

특히나 믹스버스에 사용할 수 있는 스테레오 이큐, 컴프레서 라던지 아날로그 서밍 박스들이 요즘엔 굉장히 인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믹스 버스에 연결하는 것은 개별 채널보다 훨씬 연결이 간편하고 (딜레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엄청나게 많은 인과 아웃을 요구하지도 않으니 말이죠.

저도 Manley Slam! 이라는 제품을 믹스시에 믹스버스에 이용하거나 마스터링시에 마스터링 체인에 이용하기도 하면서 그 감칠맛 나는 손맛에 이끌리기도 하고 있고, 제가 작업하는 스튜디오에는 평생 소유하지 못할 모든 하드웨어들이 즐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저의 하드웨어가 아니기 때문에 저만의 장비를 구매하고 싶은 충동이 아주 많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마침 주변에 맨리, 챈들러, 쉐도우 힐스 등등 제품들이 중고로 쏟아져나오고 있어서 지름신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러그인들이 하드웨어의 90프로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트랜스포머와 진공관의 느낌이 나머지 10%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어떤식으로 튜브와 진공관에 소리를 보낼 것이냐에 따른 게인 스테이징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에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Universal Audio 처럼 그부분까지를 섭렵하기 위해서 HR (Head Room)을 조정할 수 있는 노브까지를 플러그인에 구현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실제로 아날로그에서 인라인 진공관/트랜스포머 앰프를 다양한 레벨로 통과시키면서 얻어내는 그 뉘앙스는 아직까지 플러그인에서 100프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나머지 5%~10%의 다름이 믹스의 결과물이 완성되고 완성되지 않음을 좌지우지 한다거나, 그 다름 때문에 하드웨어의 단점까지를 카버해 줄 수 있냐는 것은 논외겠지만요.

 

위의 그림을 보시면 하나는 API 아웃풋 트랜스포머, 하나는 CarnHill 트랜스포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제가 주로 사용하는 믹스버스 체인 입니다. (순서 무관) 다년간 다양한 믹스버스 플러그인 체인을 사용해보면서 저에게 가장 음악적으로 들리는 플러그인들의 조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트랜스포머가 가지고 있는 성향을 만들어주는 체인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도 모르게 스스로 아주 다양한 플러그인들을 섞어서 트랜스포머의 성향을 만들어 냈는데, 실제 트랜스포머가 있는 하드웨어를 사용한다면 어쩌면 하나의 하드웨어로 가장 빠르게 그 성향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죠. 세 그래프 모두 트랜스포머가 가지고 있는 Overshoot 케릭터와 Rise Time 케릭터등이 확연하게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저의 용의선상엔 SSL Sigma, Shadow Hills Industries Dual Vandergraph, Chandler Curve Bender 같은 제품들이 아련하게 보이면서도.. http://magicdeatheye.com 같은 제품 하나만 있으면 끝일텐데 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항상 무언갈 사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욕심이기도 하지만 글 초반에 이야기했던 “어떻게 하면 나의 이런 작업들을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게 되는 시점” 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죠. (이렇게 정당화.)

 

여러분들이 원하는 하드웨어는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인지 궁금하네요.

댓글로 여러분들의 판타지를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